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 후부터, 원래부터 크게 관심이 없었던 '프로정치'에 급속도로 흥미를 잃었다. 뭐랄까 그 기분은. 그가 당선되던 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나라를 뜨자고 했었던 것 같다. 후후.
뭐, 어려움이 닥치면 해결해야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대충 스물스물 회피하려는 우울기질이 강한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 여기에 대해서 적어도 할 일은 하고 어떤 평을 하라던가하는 그런 고언들은 패쓰하겠다. 나로서는 그런 반응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할 일'이냐는 그런 당위는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어떤 발언이든지 자격을 운운하는 말은 그 자체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위는 작위와 부작위를 모두 포함한다. 요컨데 나는 다수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회의를 표하며, 내 표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서 정치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한나라당이 득세하는 상황은 나를 역시 불편하게 만든다. 지난 해, 나를 '빨갱이'라고 내몰았던 우리 '친척 아재'에게 항변하길, 나는 내 생활과 관련된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뿐, '프로 정치꾼'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양자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게 하는 그들의 세력다툼이 지리하다. 내내 자다가 배고프면 스물스물 일어나서 초원을 휘돌아보고는 몇 마리 잡아먹고, 딴 놈들이 나타나면 유혈이 낭자하게 싸운다. 승리하면 자신들이 초원을 지켰고 이것이 민의(예전에는 신 또는 하늘의 뜻ㅋ)라고 득세하는 반면, 패배하면 정의는 언젠가는 승리한다고 운운해대는 그런 썩은 고기가 이빨에 끼여 비린내나는 육식동물의 세계가 신물이 난다.
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린 지금, 내가 예상하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로 대표되는 양 진영 모두에게 크게 실망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막기 위해서 정책 결과의 선전 및 홍보에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인 '적'이 있어서 생존을 위해 '한국'이 단합되는 그러한 위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마음을 돌릴 것이다.
나는 학문적 정치의 문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의 글을 보자.
자세히 말하자면 구조적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해 남들이 봐서 '서민'이라도 나는 '중산층'이라고 의미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실의 문제를 상기시키기 위해 구조적 피해자(?)들의 모습로 정치영상물을 만드는 것 역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본의와 무관하게 지리멸렬한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지며 이것이 진보의 전체 이미지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경제적 하위층이 아니고, 이랜드나 KTX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지 않으며, 장애인이 아니고, 체계로부터 소외되는 그런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러한 '패배자'가 아니며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딸, 아들들도 여기에 속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에 속하며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 자산을 더 모으고, 애들 성적을 고민할지언정.
이와 관련해서 따로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돈이 많으면, 장애가 없는 사람이면, 회사의 중역이면,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는 이성애자이거나 다른 성에 폐쇄적인 남성이면 진보일 수 없는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위치 지워진 인식적 맹점으로 인하여 어려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진보를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구현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에 반대해서 긍정적인 가치를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 그 자체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 긍정적인 힘의 발현이 무엇이고 모두가 여기에 동참할 수 있음을 밝히고 설득시킬 기회가 바로 '지금'이며 '여기'이다. 이 정치의 위기를 도전으로 삼아야 한다.
뭐, 어려움이 닥치면 해결해야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대충 스물스물 회피하려는 우울기질이 강한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 여기에 대해서 적어도 할 일은 하고 어떤 평을 하라던가하는 그런 고언들은 패쓰하겠다. 나로서는 그런 반응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할 일'이냐는 그런 당위는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어떤 발언이든지 자격을 운운하는 말은 그 자체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위는 작위와 부작위를 모두 포함한다. 요컨데 나는 다수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회의를 표하며, 내 표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서 정치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한나라당이 득세하는 상황은 나를 역시 불편하게 만든다. 지난 해, 나를 '빨갱이'라고 내몰았던 우리 '친척 아재'에게 항변하길, 나는 내 생활과 관련된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뿐, '프로 정치꾼'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양자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게 하는 그들의 세력다툼이 지리하다. 내내 자다가 배고프면 스물스물 일어나서 초원을 휘돌아보고는 몇 마리 잡아먹고, 딴 놈들이 나타나면 유혈이 낭자하게 싸운다. 승리하면 자신들이 초원을 지켰고 이것이 민의(예전에는 신 또는 하늘의 뜻ㅋ)라고 득세하는 반면, 패배하면 정의는 언젠가는 승리한다고 운운해대는 그런 썩은 고기가 이빨에 끼여 비린내나는 육식동물의 세계가 신물이 난다.
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린 지금, 내가 예상하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로 대표되는 양 진영 모두에게 크게 실망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막기 위해서 정책 결과의 선전 및 홍보에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인 '적'이 있어서 생존을 위해 '한국'이 단합되는 그러한 위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마음을 돌릴 것이다.
나는 학문적 정치의 문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의 글을 보자.
진보진영 또는 진보정당들 내부에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활동에 나서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러나 매번 그러한 활동들은 정치적인 구호 속에 묻혀버린다. 그것이 통일정책이 되었든, 노동정책이 되었든, 환경정책이 되었든, 이제 그것은 세상에 설명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구호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며, 구조적 피해자들의 간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왜 이러한 정책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러한 정책이 제공해 주는 미래는 어떠한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이 글에서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바로 '구조적 피해자의 간증(?)'이라는 표현이다. 나는 이 글에 동감한다. 진보가 구조적 피해자(?)을 통하여 현실을 알리는 것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보의 주체 범주를 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구조적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해 남들이 봐서 '서민'이라도 나는 '중산층'이라고 의미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실의 문제를 상기시키기 위해 구조적 피해자(?)들의 모습로 정치영상물을 만드는 것 역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본의와 무관하게 지리멸렬한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지며 이것이 진보의 전체 이미지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경제적 하위층이 아니고, 이랜드나 KTX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지 않으며, 장애인이 아니고, 체계로부터 소외되는 그런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러한 '패배자'가 아니며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딸, 아들들도 여기에 속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에 속하며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 자산을 더 모으고, 애들 성적을 고민할지언정.
이와 관련해서 따로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돈이 많으면, 장애가 없는 사람이면, 회사의 중역이면,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는 이성애자이거나 다른 성에 폐쇄적인 남성이면 진보일 수 없는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위치 지워진 인식적 맹점으로 인하여 어려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진보를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구현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에 반대해서 긍정적인 가치를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 그 자체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 긍정적인 힘의 발현이 무엇이고 모두가 여기에 동참할 수 있음을 밝히고 설득시킬 기회가 바로 '지금'이며 '여기'이다. 이 정치의 위기를 도전으로 삼아야 한다.



